어젠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거렸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다. 내 멘탈 갈대같네.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갔다. 길이 익숙해져서 슬슬 걸었어도 조금 빨라진 것 같다. 학교에 느긋하게 가서 수업을 듣고(수업이 재밌었다. 자꾸 말하니까 딱히 생각 안해도 입에서 단어가 그냥 나오려고 하는게 느껴진다. 아직 멀긴 했지만, 아직 답답하긴 하지만 자꾸 말하는 노력을 하다보면 잘 되겠지) 나서 학교 테라스에 앉아서 선생님이 나눠준 보충자료랑 문법 퀴즈를 풀었다. 오랜만에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음악도 듣고...
그리고 카페테리아에서 메누델디아를 먹어 보았는데 생소한 음식들뿐이라서 놀랐다. 콩 수프가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밥에 소금간이 쳐진건지 밥이 좀 짜서 놀랐다.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맛있었는데 샐러드는 도대체 무슨 과일인지 야채인지로 만든건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점심먹고 한시 사십분쯤 에아핏에서 준비해준 수요일 과정을 갔는데 나 포함해서 학생 4명인가랑 담당자 파울라랑 학교에서 식물학 전공중인 학생을 만나서 학교 정원을 둘러보면서 연구용으로 기르는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파울라는 참 친절했다. 한국인답게 스페인어 잘 못해요~ 했더니 모르겠으면 꼭 물어보라 그러고 알레한드로가 하는 말 다 알아들었는데도 영어로 따로 설명해주려고 하고 열심히 챙겨줬다. 파울라는 외국에서 많이 살았는지 발음이 뭐랄까 스페인 스페인어같고 표준적인 편이라서 파울라의 말은 잘 들렸는데 알레한드로는 그냥 빠이사라 그런지 말이 무지 빠르고 조금 d발음을 먹기도 하고, más에서 s를 먹기도 하고... 근데 두시간 가까이 알레한드로가 떠드는걸 듣고 있으니까 종국에 가선 잘 들려서 신기했다. 흑 현지친구가 있으면 좋을텐데......
끝나고 나서는 버스타고 집에 왔는데 창밖에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지, 버스 안에 사람들은 가득하지, 버스는 어마무시하게 흔들려서 분위기가 어수선한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았다. 참이건 내가 타는, 저멀리 에스따디오와 수라메리까나 역 쪽을 돌아오는 순환노선(circular 302)만 그런거일수도 있지만 버스에 진짜 별 사람들이 다 타서 노래부르고 구걸도 하고 물건도 팔고 한다. 피난해온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타서 자기나라 지폐를 판다던가 노래하면서 도움을 호소한다던가 하기도 하고 그냥 빠이사가 과자 한봉지나 사탕 한두개를 팔기도 한다. 돈많은 동네만 왔다갔다하는 노선(뭐 엔비가도-뽀블라도라던지) 에선 아마 안그럴거같은데 어쨌든 오늘도 산안또니오 지나서 어떤 사탕 파는 사람이 올라타서 앉아 있는 사람들한테 막 사탕을 권하고 했는데 나는 바가지를 쓴다던지 혹시 소매치기를 당한다던지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뭔가 무례한 짓을 하진 않을지 걱정이 되어서 그냥 말을 못알아듣겠고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고개만 저었더니 그냥 웃으면서 다른데로 갔다(이건 외국인으로서 유일한 이점인것 같다. 말을 못알아듣는 척하면 그냥 냅둠). 근데 사탕 다 팔고 나서 내리기 전에 비어있는 내 옆옆자리에 앉더니 나한테 손짓으로 자기가 하나 주겠다고 가져가라고 열심히 말해서 감사하게 받아왔다. 그 와중에 버스가 급출발하면서 사탕을 놓쳤는데 다시 주워다 줬다. 아마 그 사람은 내가 사탕을 먹고 맛있어하는 모습을 보고싶어했겠지만 내가 까먹기도 전에 내렸다.
그래서 기분이 이상하다. 어제 산타페 몰의 부자동네에서는 좋지 않은 경험을 두번이나 했는데 오늘은 같은 나라 사람이지만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의 친절을 경험했다. 흠 왜일까?
어쨌든 오늘도 뭘 많이 해서 매우 피로하다. 식물원 보면서 까먹고 사진을 한장도 못찍어서 속상하다. 그래도 어제처럼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 건 아니라서 좋다. 참 알 수가 없어서 머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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