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 수업을 들었더니 아무데도 안 나가고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 있는 토요일이 너무나 소중해졌다. 수업 네시간도 하고, 점심먹고 회화연습도 하고 어쩌다보니 학교에서 해주는 활동들에도 가다보니... 늦잠자고 아침도 엄청 느긋하게 폰하면서 먹고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있으니까 천국이다.
반에 인원이 세명밖에 없는데 한 명은 군인이라 별로 농담도 안하고 자기한테 말걸때만 말하고 다른 한 명은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분위기가 처지면 내가 자꾸 나대게 된다. 이전 반에는 사람도 다섯이나 있고 분위기도 엄청 좋았는데 이번 반은 너무 차분해서 조금 지루하다. 안 그래도 공부도 네시간이나 하는데 그렇게 시키는 것만 하고 재미없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다들 안 지겹나?... 근데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을 워낙 본적이 없어서 그러니까 전혀 몰랐는데 사람들이 수업 시간에 참 얌전한 것 같다. 그쪽의 사회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전에 에리트레아에서 온 남자애도 그랬던 것 같은데. 근데 생각해 보니까 레벨 3에서 하이로도 나를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땐 콜롬비아에 처음 와서 모든 것에 경계하고 잔뜩 얼어있던 시기였으니까. 아니면 그냥 디아나 선생님이 좋아서 농담이 쉽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확실히 내가 변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걸음도 느려졌고, 가끔 기분이 안 좋을 땐 많이 울적해지긴 하지만 아닐 때는 많이 웃기도 하고. 전엔 누가 나한테 지나가면서 인사하면 마음 속으로 앗 타이밍을 놓쳤다...!하면서 그냥 가버렸는데 요샌 반사적으로 인사를 한다. 아는 사람한텐 얼굴 보자마자 먼저 인사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 사람들이 마냥 순박하고 마음 좋다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선 언제 어디서든 치나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다.
참 그리고 이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월요일부터 귀마개를 끼고 잤는데 그새 익숙해졌다. 서울의 내 방에선 사방이 너무 고요해서 심장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었는데 여긴 귀마개를 안 끼고 자면 소음에 잠이 깬다는 게 너무 판이하게 다르다. 근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이제 소음에도 점점 익숙해 지는 것 같다.
기가 막힌 이 건물의 건축 상황에 대해서도... 그동안 가스가 있는 곳을 열면 풍기는 세제냄새인지 락스냄새인지에도 걱정이 많았는데 집주인에게 물어본 결과 건축자재나 그런 것 때문일거라고 했다. 그쪽 벽에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데 그게 세탁기 통을 연결해서 오수를 내보내는 부분이라면 윗집에서 세탁하고 나서 나는 냄새일수도 있는 거고... 어쨌든 가스불을 막 켰을 때 나오는 가스냄새와는 확연히 다르긴 하다. 전에 너무 걱정이 되어서 비누거품 내서 밸브에도 묻혀봤으니까 뭐. 그래도 난 겁이 많으니까 되도록이면 요리를 많이는 안 하려고 한다. 환기도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하고.
아직 이 집에서 다음달도 지낼 지는 확신을 못했다. 귀찮아서 아마 연장할거같긴 하지만 탐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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