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나날들이다. 그냥 수업 다니고 숙제하고 장 보고 끼니 때 되면 요리해서 밥먹고 집에와서 공부하고 그러고 살고 있다. 며칠 후에 새로 예약한 집으로 가면 길이랑 동네 익히느라 조금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대부분 익숙해서 뭘 하든 지루하다.
메모리얼 뮤지엄에 갈까 말까 하다가 기운이 없고 나가기 싫어서 안 간지 2주가 넘었는데 오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반이 진도가 빠르니까 다음 주에 하루 정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는 대신 메모리얼 뮤지엄에 가는 게 어떠냐고 했다. 오 이러려고 안갔나보다 싶었다. 가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타국에 나와서 처음 pms를 겪었는데(지난달에는 생존본능이 강해져서 그런지 몸이 긴장해서 그런지 생리를 두번하고 넘어감) 물론 한국에 있었어도 풀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여긴 정말 나밖에 없어서... 그냥 유튜브 들으면서 어떻게 버텼다. 한국 가서 살 것들도 생각하면서. 그래봤자 나는 거지인데다가 사치하는 데에 돈을 쓰면 내 초자아가 지랄을 해서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받기 때문에 목록 만들고 상상만 하지 진짜로는 안 사겠지만. 나는 왜 이렇게 어렸을 때 부모가 나한테 주입시킨 것들에 아직도 얽매여 있을까?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나한테 긍정적 피드백을 안 해줬으면 돈아끼면서 궁상떠는 짓거리를 내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걸까? 기준도 아니고 거의 절대적 믿음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라니. 도대체 어떤 정신적 학대가 사람의 사고를 이렇게 마비시킬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그걸 해낸걸까? 대단하다.
어렸을 때 내 부모는 내게 장녀로서의 책임감을 당연히 요구하며 온갖 것들을 강요하는, 당근은 주지 않고 채찍만 휘두르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조금 자라자 이번에는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인, 유명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면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자신들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는 못난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했다. 손만 대지 않았을 뿐 정서적 학대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내가 자라가면서 갖게 되는 인간으로서의 다른 욕망들(물욕이나 휴식하고 싶다는 생리적 욕구 말이다. 내게 성욕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아예 가져서도 안되는 것이었다)은 모두 무시했고 먼저 네 책임을 다한 후에 요구를 하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은연 중에 돈이 그들 삶의 한 잣대임을 드러내는 발언을 종종 했다. 학생에게 그런게 왜 필요하냐, 얼마 전에 사주지 않았느냐, 학원이 얼마나 비싼데 그걸 빼먹느냐, 남들하고 똑같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왜 너는 못하느냐, 그런건 비싸서 못사준다던지, 나중에 사주겠다던지.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중에 커서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부모를 벗어나서 새로운 삶, 끊임없이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 주기만 하는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게 너무 힘든 때에 살고 있다는 거였다. 게다가 저렇게 기형적인 양육 환경에서 자라서 나는 타인에게 내 가치를 드러내는 걸 너무도 공포스러워했다. 그래서 나는 어영부영하며 다른 걸 하다가 한국에서 직장에 들어가기 좋은 나이를 놓쳐버렸고 아직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살고 있다. 성장 과정에서 문제를 겪은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이제 부모는 나이가 들었고 자신들이 어떻게 나를 키웠는지 다 잊어버린 채, 늙음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너그러움으로 나를 대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들이 내게 준 상처를 못 잊고 있으며 유년기의 규율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들은 심리적인 족쇄가 되어 여전히 내가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을 때 나를 멈춰세우고 억압한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들은 내게 넌 첫 아이로서, 하나의 딸로서 특별했다기 보다는 그냥 맞벌이 하는 부모님 대신 동생을 잘 돌보고 부모님도 잘 돕는 맏딸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내 마음 속 가장 여린 부분을 베어 낸다. 그것들은 나의 존재는 존재 그 자체보다는 내가 해 내는 성취에 좌우되는 거였다고 말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너는 존재하기 위해 해내야 한다고 속삭인다. 그렇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말이다.
자꾸 이런 걸 쓰게 된다니 아직 pms가 안 끝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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