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ke 2019. 4. 28. 06:59

힘겨운 3일간의 과히라+뿐따가이나 여행을 마치고 산타마르타에서 하루를 보내며 쓰는 일기.

내가 간곳은 매직투어였고 과히라(뿐따 가이나)2박3일코스였다. 산타마르타에서 투어를 검색해보면 엑스포투어랑 매직투어가 나오는데 사실 둘이 담합해서 하는거라 가격도 별 차이 없고 내용도 별반 다를게 없다. 가격 차이가 있다면 서비스의 질이 조금 다른 정도...? 근데 그래봤자 해먹이 친초로가 되고 그런 정도라... 실제로 내가 투어할때도 짚차 세대가 같이 다녔는데 두대는 매직투어의 차였고 한대는 엑스포투어의 차였다. 그리고 가이드 셋은 직장 동료처럼 굴었다. 결론적으로 그놈이 그놈이다.

세마나 산따 기간이라 나처럼 콜롬비아에서 학교 다니는 독일인 학생 두명, 직장휴가받아서 놀러다니는 프랑스인과 독일인, 직장 그만두고 여행다니는 스페인인과 스위스인 친구 두명, 세마나 산따라 휴가 온 콜롬비아노+콜롬비아나 세명이랑 같이 다녔다. 나랑 콜롬비아사람들을 빼면 다 유럽인들이다. 역시 긴 휴가를 보장해주는 편이 직원 삶의 질을 올리는 데 좋다는 생각이 든다.

첫째날에는 새벽에 내 호텔로 여행사에서 픽업을 하러 온 다음에 사람들을 태우고 팔로미노->리오아차->마나우레->우리베 순으로 간다. 아침은 팔로미노에서 먹고 열심히 달려서 호스텔에 가서 짐풀고, 점심먹고 까보델라벨라에 갔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문명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진 핸드폰 충전이 힘들거라고 예상해서 사진만 찍고 거의 폰에 손을 안대서 기억이 잘은 안난다. 까보델라벨라 보기 전에는 근처에 사진찍기 좋은 예쁜 해변이나 사막 풍경이 좋은 그런데에 잠깐씩 멈춰서 내리게 해준다. 점심은 그냥 꼬스떼뇨식 음식들이다. 쌀밥, 생선이나 고기구운거, 샐러드, 쁠라따노튀김. 맛있다. 그리고 내가 묵은 호스텔은 어떤 바닷가였는데 와유족이 호스텔이랑 레스토랑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까보델라벨라는 멋지긴 한데 소금기 있는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진짜 균형 잘못잡아 넘어지면 돌무더기에 얼굴 찧을정도로 세게 분다. 그래도 진짜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수영복을 챙겨가면 예쁜 해변에서 수영도 할 수 있다. 나는 압박스타킹 벗고 물 적시고 닦고 다시 스타킹 신느니 안하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냥 바람만 쐤다.
호스텔에서 끔찍했던 것은 샤워실이 있긴 있는데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게 아니고 물을 커다란 양동이에 담아서 가지고 들어가서 재량껏 씻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샤워실에는 전기도 안들어온다. 즉 깜깜한데에서 손바닥만한 불투명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서 반 장님처럼 씻던지 아님 머리에 쓸수있는(그 광부들이 쓰는 그런거) 손전등을 지참해서 쓰고 하던지 해야한다. 그리고 물은 소금기가 있어서 짜다. 나는 몸을 씻고 나서 발에 모래같은게 묻는게 정말 죽을정도로 싫은 사람인데 그런거도 그냥 참아야했다. 뭐 그런 샤워실에 발수건이 깔려 있을리가. 그리고 화장실 변기는... 물이 안내려간다. 볼일보고 그 위에 물을 양동이로 퍼서 부어서 그 수압으로 떠내려 보내야 한다. 하하.....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문명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근데 이미 와버린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끔찍해하면서 그냥 그렇게 했다.
이런게 다 싫은데 뿐따 가이나에 꼭 가야겠다 하는 사람은 돈을 쓰면 된다. 하룻밤에 5만뻬소정도만 더 내면 멀쩡한 방과 침대와 개인 욕실과 샤워기를 구할 수 있다. 우리 일행 중에 콜롬비아노 커플도 그랬다. 나는 돈을 좀 적게 뽑아온 탓에 여행사 잔금을 치르고 나니 수중에 딱 3만뻬소밖에 안 남아서 그냥 정신적으로 고통받아야 했다.
의외로 해먹에서 잠자는 건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일행중에 최단신이라 그랬는지 나는 잘 잤는데 나보다 적어도 10센티이상 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해먹이 불편하다고 했다. 친초로가 아니어서 그랬나보다. 해먹은 그냥 해먹이고 친초로는 큰 해먹인데 아마 와유족 사람들이 다 작달막해서 어쩌다 보니 비슷한 사이즈인 나는 해먹도 편했는데 키가 큰 유럽인들은 친초로가 더 나았나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닷가라 계속 바람이 불어서 챙겨간 모기기피제는 쓸일이 없었다. 새벽에는 조금 쌀쌀했다.
내가 고역이었던 건 나말고 일행들이 다 유럽인들+콜롬비아노라는 거였다. 우리 가족은 특히 서로 관심이 별로 없고 밥먹을때도 거의 말이 없는데다가 나는 모르는 사람하고 하는 스몰톡이 진짜 어색하다. 차라리 스타벅스에서 하는 그런 스몰톡(날씨 좋네, 파트너님 이름 예쁘네, 신메뉴 맛이 있네없네)이런거는 짧게 몇마디니까 할 수 있는데 이 사람들하곤 앉을 때마다 나는 한국인이고, 메데진에서 스페인어 공부중이고, 콜롬비아 온진 한달됐고, 앞으로 서너달 더 있을거고, 한국에선 뭐했고 메데진 좋고 콜롬비아는 억양이 평탄하고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책을 좋아해서 왔고 이걸 레퍼토리로 대여섯번씩 읊다보니 짜증이 났다. 그사람들의 tmi를 다 알게되는것도 덤이고... 그리고 시발 말할때마다 인간들이 내 이름을 못알아듣고 발음을 힘들어해서 쏜이나 쑨이라고 말하는걸 선이라고 정정하기 귀찮아서 그냥 리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나중에는 내가 말을 안하고 그냥 있으니까 이 사람들은 내가 영어와 스페인어를 동시에 못해서 그런줄알고 나를 챙겨줬다... 그런게 아니예요... 그래도 친절하고 다정한 마르셀라와 안드레스 커플은 계속 나를 불러서 사진도 같이 찍고 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또 좆같았던건 일요일에 산타마르타 도착해서 잠깐 묵은 호텔에서 씻었는데 샴푸를 따로 안챙기고 그냥 어메니티에 있던 비누로 머리를 감았는데 비누가 얼마나 구린지 머리카락이 단번에 10년쯤 쓴 빗자루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그 상태로 소금바람을 몇시간을 맞았더니 머리카락이 끔찍하게 엉킨 채로 딱딱하게 굳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둘째날에는 해변과 사막과 두나 데 따로아 등등에 갔다. 해변은 아주 예뻤는데 바람이 미친듯 불어서 선글라스를 안가져간 걸 후회했다. 애초에 콜롬비아 올 때 안챙겼는데 내가 바닷가에 오게 될 줄 몰랐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고(가이드 왈 메뉴가 고기, 생선, 까라꼴, 까마론이 있다고 하길래 나는 까라꼴..?! 했는데 독일인 아저씨는 까라꼴이 뭐냐고 하길래 내가 스네일이라고 했는데 스네일이 뭔지 모른 아저씨는 사전을 검색해보고 놀라 뒤집어질 뻔했다. 근데 그래도 용감하게 까라꼴을 시키길래 뭐지 했는데 알고보니 까라꼴 데 마, 즉 소라였다...) 따로아에 있는 사구를 보러 갔다. 해변도 예쁘고, 바람도 세고, 모래도 엄청 많고 뜨겁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닮은 예쁘고 상냥한 마르셀라가 어마어마한 spf도수의 선크림을 빌려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날부터 팔에 화상입었을듯. 어쨌든 나는 뜨거운 공기 속에 있으면 녹아내리는 사람이라서 고생이었다. 경치는 참 좋다. 수영복을 챙겨가면 역시 여기에서도 수영이 가능하다.
이날은 와유족이 드문드문 사는 곳을 가로질러 갔는데 와유족은 수입이 변변치 않다보니(게다가 해변가도 아니고 모래와 선인장밖에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진짜로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목에 못 지나가게 끈을 걸어놓고 서서 손을 내밀며 뭔가 달라고 한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나 아기를 안은 여자들인데 그래서 우리 가이드는 과자를 가득 사서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줬다. 아마 갈수록 심해지는 엘니뇨와 지구온난화때문에 여기도 계속 사막화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좋아지진 않을 것 같은데 마음이 아팠다. 더 짜증나는 건 가이드가 운전하면서 해준 얘기중에 이 부족 남자들은 게을러서 여자들이랑 애들이 저렇게 구걸할동안 그냥 집에서 낮잠이나 잔다고 했다. 물론 성인 남자가 구걸을 하면 사람들이 먹을 걸 잘 주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그럴 거면 애라도 낳지 말던지 저렇게 아내랑 자식들을 고생시켜서 가장의 자존심을 챙기는게 한심해보였다. 여기라고 다르진 않겠지. 나중에 구글링해서 찾아봤는데 와유족은 일부다처제라고 한 것 같다. 맙소사... 그리고 나는 여기에서도 치나소리를 들었다. 기가 막히지ㅎㅎ 팔찌 파는 남자애중에 딱 봐도 일곱 여덟살정도 된 애새끼가 이쪽저쪽 들이밀면서 팔찌 사라는 말을 하다가 나를 보고 팔찌 좀 사셈 치나 이랬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근데 이미 그런말을 한다는 건 걔가 어디서인가 치나라는 단어를 들었고, 어떻게 생긴 사람한테 치나라고 말하는지도 안다는 뜻이라는 거잖아? 아마 걔의 아빠나 형이나  아니면 아는 남자 어른이 동양인한테 그런 말을 쓰는 걸 보고 배운 게 아닌가 싶었다. 여기 남자들은 대부분 치나 소리를 하면서 남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려고 하니까, 그리고 와유족 남자라고 다르겠나 싶다. 어쨌든 이 어린놈은 내가 짜증난 표정을 지으면서 가버리니까 날 쫓아와서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못알아듣는 척하고 가버렸다. 뭐 내가 내이름은 칭칭이야^^ 이딴소리라도 하길 바란걸까?
그리고 오후에 뿐따가이나로 가서 등대를 보고 예쁜 일몰도 보고 호스텔로 갔는데. 지금 구글맵스로 검색하면 호스텔이 지도에 3개 나오는데 네이버 블로그에선 알렉산드라가 좋다고 한 거 같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고 우리 가이드는 우리를 루즈밀라로 데려감.
여긴 그나마 나았던게 샤워실에 샤워기가 달려 있긴 하다. 하지만 역시나 짠물이었고(얼굴을 씻다가 입으로 물이 들어오면 짠맛이 느껴짐) 샤워실 바닥도 발에 모레 묻히고 들어온 인간들덕분에 더럽다. 딱 어디 서해바다의 민박집 샤워실느낌임. 그리고 화장실 물내리는건 여전히 수동이다. 수동으로 물내리는 작업 자체가 끔찍하다기보단 화장실 입구에 거대한 통이 있고 거기에 물내리는 용도로 쓰는 물을 담아뒀는데 그 물이 엄청나게 오염됐을거라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난 분자생물학을 배웠으니까 온갖 사람들이 볼일보고 나와서 안씻은 손으로 양동이잡고-물 푸고-내려놓고-하는걸 반복했을걸 상상하니 그 물통을 보는 순간 토할것같았다.
저녁은 진짜 맛이없는 스파게티를 먹고(루즈밀라는 엄청 큰 호스텔이라 그런지 사람이 되게 많고 가이드가 알려 준 식사 시간보다 음식이 훨씬 늦게 나왔다)또 서로 tmi를 주고받고 여행 어디 다녔는지 앞으론 어디갈건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밥을 먹고 친초로에서 잤다. 친초로 좋아요.

셋째날엔 해먹에 앉아서 꽤액 하는 앵무새 때문에 다섯시에 깼다. 아침먹고 나서는 배타고 홍학떼를 보러 갔다. 이날은 얼마나 타겠어 하는 안이한 생각에 선크림을 안발랐다가 팔에 1도화상을 입었다 ㅎㅎ... 그치 여기 태양은 한국의 자외선이랑 차원이 다르지... 고작 한시간 정도였는데 팔이 새빨갛게 익고 쓰라렸다. 아직도 쓰라리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념사진을 찍고 리오아차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먹고 나서는 I♥️Rioacha인가 거기서 모칠라 쇼핑타임을 갖고 나서 산타마르타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리오아차에서부터 한 사람씩 줄어들더니 팔로미노, 타이로나, 산타마르타에서 차례차례로 다들 내리고(그래서 생전처음으로 이날 베시토를 세번이나함) 내가 제일 마지막이었다. 아마 여행사 사무실이랑 호텔이 가까워서 그랬나봄...

뭐 그랬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머릿결은 전혀 바뀐게 없다. 어서 메데진에 가서 린스범벅을 하는 수밖에 없는가보다.

오늘은 그리고 일어나서 조식먹고 나가서 atm을 찾아서 돈을 뽑고 빨래를 맡기러 갔다. 역시 관광지에다가 콜롬비아+세마나 산따까지 겹쳐서 그런지 문밖에는 세탁 17000뻬소라고 써 있는데 들어가니까 주인은 19000뻬소를 요구하고 내가 2만뻬소 지폐를 줬는데 그걸 자기 핸드폰 아래에 깔아놓고 설명을 하고 나서 다시 돈달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기가막힌 짓을 했다. 이 사람들은 이럴때 돈 줬잖아요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오 미안미안 내가 실수했네 이러고 그냥 넘어간다. 참 어이없지. 호텔 오기전에 들른 엑시토에서도 그랬다. 잔돈 안줬어요 이랬더니 어 미안미안 하면서 1050뻬소중에 천뻬소만 줌ㅎㅎ 거지같은 인간들아... 하이로가 세마나산따에는 모든게 다 더욱 비싸진다는 말을 한 게 이런건가보다. 천연덕스럽게 돈을 더 요구하고 거스름돈을 적게 주고 그런다. 한두명이 이러면 셈을 못하나보다 할텐데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그래서 더 할말이 없다.
어쨌든 빨래 맡기고 나서 무세오 델 오로를 가보려고 했는데 글쎄 성 목요일이라서 오늘이랑 내일 쉰다고했다... 흐흑... 그래서 그냥 산따마르따 만이랑 공원 둘러보고 엄마랑 소영이언니 줄 예쁜 가방이랑 동혁이 줄 팔찌를 샀다. 도미노도 있길래 안에 안보고 샀는데 돌아와서 열어 보니까 너무 퀄리티가 구리고 안에 그림이 다 번져있고 난리였다. 게다가 도미노 상자에 이름 이니셜 새겨준다길라 동혁이 이름 이니셜을 줬더니... 어린애가 새겨서... 안하느니만 못한 빼뚤빼뚤한 글씨로 새겨져서 도저히 선물을 줄 퀄리티가 아니었다. 내 만이천뻬소 내놔 젠장 ㅡㅡ 그래도 마음에 쏙 드는 가방을 두개나 착한 가격에 사서 좋다. 그리고 이것들 사고 오는데 누가 날 따라오는 것 같아서 발걸음을 빨리 했더니 그 사람이 나한테 따라붙어서 갑자기 말을 걸었다. 자기는 영어를 할 줄 아는데 관광객들을 데리고 다닐만한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 거다. 근데 걔의 옷차림이 너무 남루하고 자꾸 네가 예쁘고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길래 겁이 나서 오늘 공항에 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호텔로 들어왔다. 흠 이런 식으로 접근해오는 사람은 얼굴이 크리스헴스워스급이라도 경계심이 들텐데...

산따마르따는 예쁜 관광도시긴 한데 마음이 편하질 않다. 길거리에선 오줌냄새가 진동하고 구걸하는 사람들도 많다. 관광하러 와서 호스텔이 밀집한 곳에 자리잡고 바에 가서 술마시고 디스꼬떼까 가서 춤만 출거면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그런건 관심없고 이런 거만 보인다. 도시가 관광업에만 의존하다 보니까 생기는 그런 현상들? 그래서 빨리 메데진에 돌아가고 싶고 메데진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현상이 벌어졌다...